촛불이 켜지기까지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반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2016년 9월 25일 농민운동가 백남기 사망 사건 등을 겪으면서 민심을 점차 잃어갔다.

국민들의 거부감이 팽배한 상태에서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 PC가 발견되면서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탄핵과 하야가 오르는 등 퇴진 요구가 빗발치게 일어났다.

10월 25일 박근혜의 기만적인 1차 대국민담화로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폭발하였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학생 4명이 ‘국회는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구호의 현수막과 함께 기습시위를 펼쳤다. 2명은 부산지역 학생이였다. 연이어 수많은 대학생들과 국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저항의 신호탄이 전국에서 올랐다.

26일 부산에서는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박근혜 하야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진행하였으며 27일 부산 벡스코를 방문한 박근혜에 맞서서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하야를 촉구하는 부산지역 대학생들의 기습시위가 일어났다. 대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학생들이 연행된 해운대경찰서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벡스코 기습시위 후 청년학생들은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긴급 거리행진을 시민들에게 제안하였고 서면 일대에서 가두행진 형식의 시위가 열렸다. 당시 철도 민영화 반대로 파업 중이던 철도노동자들과 부산시민들이 가세하면서 부산촛불운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